프랭키 매닝과 프레디 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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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제목의 두 사람은 아마도 현역 댄스 인스트럭터 중 최고령자일 것 같습니다. 프랭키는 14년 생이고, 프레디는 거의 80살에 육박하지 않을까 추정해 봅니다. 프랭키는 스윙댄스인 린디합의 아버지이고 프레디는 라틴댄스인 차차 샤인의 대가입니다.
아주 오래전에 프랭키가 하는 워크샵에서 심샴이라는 라인댄스를 배운 적이 있습니다. 이 때 라모나 스타펠드라는 린디 세계챔피언과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시니토: 아직도 배울 게 있냐? (라모나는 제 친구이기도 합니다)
라모나: 아니?
시니토: 뭐하러 왔냐? 바쁠텐데...
라모나: 그냥 프랭키가 좋아... 넌 왜왔냐?
시니토: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아서...
프랭키는 자기 생일선물로 한국에서 보내 온 것이라며 제게 뭘 보여 주더군요. ( ㅋㅋ)
90이 넘은 분이 춤을 추면 얼마나 추고, 가르치면 얼마나 가르치겠습니까만은 프랭키 워크샵은 언제나 만원입니다.
프레디는 개인적으로 본 적은 없고 동영상으로만 봤습니다. 오살사 해외부분의 스페인 콩그레스에 파트너인 마이크 라모와 잠간 나오더군요. 물론 기립박수를 받았습니다. 어린 시절 코미디언 남철-남성남 듀오의 "아싸라비아" 를 따라하면 자란 저에게 "아싸 라 비아"가 스페인어의 "Pasa lo bien - have a good time"이고 그들의 발동작은 프레디와 마이크의 샤인을 표절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하는 분입니다.
앞으로 40년후에 서울에서 열리는 콩그레스에 우리 한국인 인스트럭터가 공연하고 기립박수를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몇가지 조건이 충족된다면 가능하겠지요.
첫번째가 일단 40년 후까지 서울 살사판이 살아남아있어야 하겠지요. 많은 사람들이 서울 살사판이 늘 존재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이 세상에서 사라져 간 춤의 형태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 이렇게 활성화 된 서울의 살사판은 누군가의 노력에 의한 것이지 저절로 이루어 진 것은 결코 아닙니다. 1930년대와 40년대 맨해튼을 주름잡던 프랭키가 조선의 독립을 위해 태평양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고향에 돌아왔을 때 그를 반겨준 것은 앨비스 프레슬리로 대변되는 라큰롤이었습니다. 프랭키는 린디가 부활하기까지 약 40년간을 우체국에서 일하였습니다. 자식들도 프랭키가 댄서라는 것을 몰랐다고 하더군요.
두번째는 프로 살세로스들이 살아남아 있어야 하겠지요. 폼생폼사하는 서울 살세로스가 50대, 60대 강사의 수업을 들어 줄런지 잘 모르겠습니다. 80대가 되어서도 공연하고 안무할 정도로 정신적으로, 육체적, 경제적으로 건강을 유지할 수 있으려면 프랭키처럼 술, 담배를 하지 않는 것도 방법이겠지요. 경제적 측면에서도 프로의 수입은 고정적이지가 않아 재산형성이 쉽지않은 반면에 경제적 관념이 그다지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겠지요. 안무는 사실 나이가 어느 정도되고, 다양한 춤을 경험한 후에 꽃을 피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가지 미국 프로 살세라와 한국 프로 살세라가 다른 점이 있는데 그것은 한국 프로살세라의 경우 남자의 동작을 잘 모른다는, 다시 말해서 혼자서는 수업도 안무도 할 없는 아주 위험한 상태에 있는 분이 소수이나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특히 경제적으로 매우 위험합니다. 홀로 서지 못하는 프로는 오래동안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살사판을 이끄는 프로분들을 40년후에도 웃는 얼굴로 다시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시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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